Beyond the thought: Rewriting

[Series Part 3]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다수 이후의 심판

iamvanco 2025. 12. 19. 19:08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심판이 너무나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심판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본 글에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핵심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수의 시대인가? 개인의 시대인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심판은 분명 다수였습니다.

 

열두 명의 공모자, 열두 개의 손, 열두 개의 칼자국. 그 누구도 단독 범인이 아니었기에, 책임은 완벽하게 분산되었습니다. 다수는 서로를 가려 주었고, 당시의 정의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날의 심판은 반드시 다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영향력 있는 개인의 단 한마디, 단 하나의 게시물이 출발점이 됩니다. 다수는 그 뒤를 따르며 빠르게 형성됩니다. 

이 구조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한 사람의 확신이 모든 판단을 이끌고, 그 확신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강화됩니다.

 

‧확신의 자리

판사 워그레이브는 법의 기준으로 범인을 심판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픈 과거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그의 판단은 본인 정의이자 자기 연민이었을 가능성을 남깁니다.

 

오늘날의 개인 심판 역시 비슷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정의의 이름은 확신을 강화하지만, 그 확신이 언제나 충분히 검토된 것인지는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만약 현 시대에 소설 속의 판사 워그레이브가 존재했다면 그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한 개인의 부가 어떤 나라의 GDP와 맞 먹는 시대에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한 개인이 판사 워그레이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따라 그의 행위가 극단적으로 뒤바껴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Illustration generated by AI, iamvanco.tistory.com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요

누군가는 고발하고, 누군가는 동조하며, 누군가는 침묵합니다.

이 세 역할은 정확히 분리되어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집단을 완성할 것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과거에 던졌던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판이 너무나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으며,

또 어디까지 판단하지 않을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다수의 침묵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공모가 되었고, 개인의 확신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이 두 구조가 교묘하게 합쳐진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요?

 

심판이 쉬워진 시대에서 단편적인 정보만 믿고 내 판단이 옳다는 유혹을 뿌리치는 용기

흑백논리로 단순화된 논리보다는 그 사이의 복잡합 맥락을 끝까지 관찰할 수 있는 고통을 견디는 용기

타인을 향한 성급한 칼날을 거두고, 깊은 자기성찰을 통해 발견한 겸손함으로 인류애를 실천하려는 용기

 

혹시 이런 용기는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 소설 속 어느 장면 속에 서 있을까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할까요?

 

 

이 시리즈의 이전 글 보기:

[The Omnibus Edition] 아가사 크리스티: 심판의 설계자, 그리고 현대의 초상   [둘러보기]

그녀의 작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낡지 않는 이유는, 범행의 수법(How)보다 '인간 본성의 취약함(Why)'을 설계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Series Part 1] 아가사 크리스티의 걸작들: 법 위의 심판자들  [둘러보기]

“법이 침묵할 때, 인간은 어디까지 심판자가 될 수 있을까?”

 

[Series Part 2] 상상이 현실이 된 시대  [둘러보기]

“오리엔트 특급 열차는 더 이상 눈 덮인 선로 위의 기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참조

‧A Self-Appointed Judge: 스스로 임명한 심판자 (오만하게 법 위에 서려는 자)

 

‧The hubris of reason: 이성의 오만 (인간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태도)

 

‧Moral High Ground: 도덕적 우위 (타인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위치)

 

‧사유의 흐름 (Thinking Process)

1단계 — 의문.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통해 법이 침묵할 때 인간은 어디까지 심판자가 될 수 있을까? 칸트의 정언명령을 연관시킨다면?

 

2단계 — 차이

두 작품 속 심판이 개인의 결단 혹은 다수의 합의로 이루어 진다면, 책임은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

 

3단계 — 현재와의 연결

소설 속 상상이 오늘날의 현실과 유사하다면, 우리는 어느 장면 속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