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고독한 미식가’가 보여주는 '사적 방관'과 '심미적 관음'의 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 왜 내내 혼잣말만 할까?(vs 와비사비의 미학) [둘러보기]
주인공(고로) 의 식탁은 번잡한 관계 속에서 지친 현대인에게 허락된 지극히 사적이고 최소한의 사치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탐닉을 즐기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면?
결국 자신만의 세상에 큰 울타리를 치게 되는 결과도 발생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전에 다루었던 '움벨트(Umwelt)'라는 화두와 연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나만의 세계, 그 안락한 움벨트
주인공(고로)이 식당이라는 풍경 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미각에 집중하는 모습은,
어쩌면 각자의 고유한 인식 세계인 '움벨트'를 가장 평온하게 즐기는 방식일지 모릅니다.
*움벨트(Umwelt):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감각에 따라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
고로의 독백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완벽한 성(城)을 쌓고,
그 안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현대인의 초상입니다.
이러한 사적인 탐닉은 분명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껏 진화해 온 원동력은 나만의 세계를 견고히 쌓는 것보다,
그 세계를 타인과 연결하는 '공유와 협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세계로 갇히는 사람들: 움벨트(1) [둘러보기]
방관자적 관음에서 '함께함'의 미학으로
우리는 화면 너머로, 고로상을 관음하며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늘 혼자였던 주인공(고로) 이 정말 마음이 통하는 뜻깊은 사람과 함께,
식당의 벽면이 아닌 탁 트인 야외의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그 장면에서 고로는 화려한 독백 대신, 눈앞에 마주 앉은 사람과 음지의 향기와 맛을 조용히 나누며 미소 지을 것입니다.
나만의 움벨트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움벨트와 조심스럽게 소통하는 그 순간,
고립된 개인의 사치는 비로소 '인류적인 아름다움'으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방관을 넘어, 다시 연결을 꿈꾸며
개인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은 정말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져 외부 세계(Umgebung)와의 연결 고리가 느슨해지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움벨트(2)편[개인화된 인식 세계에 갇히는 미래] 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기술과 개인화가 우리를 각자의 테두리 안에 고립시킬수록,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공유'의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고독한 미식의 미학이 완성되는 지점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충분히 충전한 우리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누군가에게 "이 맛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라고 말을 건네는 그 찰나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할 때보다, 함께 느끼고 어울려 웃을 때
비로소 가장 인간다워지는 호모사피엔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글
[시리즈 1편] 설국(雪國): 자발적 고립과 와비사비의 미학
혹시 이 소설을 읽으며, 인물보다 눈 풍경만 더 선명하게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요?
참조
·자신만의 세계로 갇히는 사람들: 움벨트(Umwelt)(1)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일까? 각 생명체가 창조한 주관적 우주."
·개인화된 인식 세계에 갇히는 미래: 움벨트(Umwelt)(2)
"기술이 만든 안락한 고립, 각자의 디지털 동굴로 숨어드는 호모사피엔스.“
·고독한 미식가: 왜 내내 혼잣말만 할까?(vs 와비사비의 미학)
"독백인가 방백인가, 아니면 ‘심미적 관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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